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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인간심리》 도날드 노먼 (Donald A. Norman)

 

심리를 다룬 내용이지만 전문용어의 사용을 자제한 듯하고, 저자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독자에게 심리학 개념을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시도도 적은듯하다. 그 노력이 저자의 노력인지 역자들의 노력인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일반인도 읽기 쉽게 하려고 애쓴듯하다. 대신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가 많이 나온다. 나 같은 일반인도 이 책을 읽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만들어진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일부 단어의 번역이 좀 어색하다.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라 그런가? 비망(Reminding), 도식(Schema), 단원화(Modularization) 등의 단어를 읽을 때 어색했다. 나는 상기, 스키마, 모듈로 쓰는 것이 익숙한데 심리학 분야의 사람들은 저 단어들이 익숙한 걸까.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지식이 머리 속이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 7쪽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는 내 머리 속에 있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나의 외부 세계, 세상과 주변 사물에서 지식을 얻는다는 의미다. 내가 사용하려는 물건 그 자체, 그 물건이 놓여있는 곳과 그 공간이 주는 의미와 제약 등. 그런 것들로부터 물건의 사용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디자인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전에 사용설명서를 읽고 머리 속에 지식을 숙지한 후에야 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말고, 그 물건 자체와 놓인 곳, 그 물건이 쓰이는 상황 등 세상에서 정보를 얻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용될 수 밖에 없게 디자인되어야 옳다는 말이다

 

오류를 일으키는 사용자들의 상황,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되어 욕먹는 디자이너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히 사람들이 왜 물건을 잘못 사용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인간 사고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는 좀 어려웠지만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의 종류와 그에 대한 예제들은 재미있었다. 오류를 방지하는 디자인에 대한 원칙도 제시한다. 그중에서 오류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는 내용이 인상깊다. (167, 177, 246)

 

책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이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머리 속의 지식과 세상 속의 지식을 모두 이용하라
    2. 과제의 구조를 단순하게 하라
    3. 일이 가시적이게 만들어라
    4. 실행의 간격과 평가의 간격을 좁혀라
    5. 대응관계가 올바르게 만들어라
    6. 자연스러운 제약 및 인공적인 제약의 위력을 활용하라
    7. 만일의 오류에 대비한 디자인을 하라
    8. 이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표준화 하라 - 233쪽
 
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면 책 속의 다양한 예제를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간단한 예제로는 출입문, 스위치 등 일상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런 도구들. 사용하다 실수를 하면 내 탓으로 돌리며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해오던 물건들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디자인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실마리를 준다.

원서는 1988년에 출판되었다. 예제도 그만큼 오래된 것들이다. 그러나 예제들은 낡았어도 그 예제들이 시사하는 점들과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되는 점들은 세상의 많은 부분이 변한 지금까지도 아직까지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에 더 읽을 거리에 저자가 영향 받은 책과 추천하는 책의 소개가 나온다. 그 중에 나의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사이몬(Simon)인공체의 과학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1981)이라는 책에서 충분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충분함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이용할 수 있는 대안들을 반드시 모두 조사하여 최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심리적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러 대안들 중 충분해 보이는 것이 나타나는 순간 바로 그것을 택한다 - 286쪽


웹사이트를 탐색하거나 신문을 읽을 때 대체로 그러지 않나? 그런 행동을 딱히 뭐라 명명해 부르지는 않지만 충분함이라는 개념이 딱 그것을 설명하는 것 같다.

웹사이트 사용성 평가 분야에서 유명한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마!라는 책에서도 사용자의 특성이 그러함에 대해 나오는데 그 책에서는 훑어보기라고 말한다. 훑어보기 행동에 대한 심리적인 설명이 충분함의 개념과 같지 않을까?

그런 특성을 가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웹사이트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너무 심오한 질문이라 당장은 답이 떠오르지 않지만 과제는 명확해 졌다.

 

* 참고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마!는 개정판의 제목으로 이전 제목은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이다.